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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시작
키치(Kitsch)란 1870년대 뮌헨의 예술시장에서 처음 만들어져, 값싸고 시장성이 높은 그림이나 조각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독일을 여행한 영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기념품으로 사간 시골 풍경 '스케치'를 독일인들이 잘못 발음한 데서 연유했거나, 싸게 만들다는 의미의 독일어 동사 verkitchen이 축약된 것이라고 한다. 헐값에 팔리던 조악한 그림을 뜻하던 키치는 그 당시 진지하고 난해한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뮌헨의 신흥 부르주아들, 즉 문화적 엘리트들의 습관이나 교양을 서투르게라도 모방함으로써, 자신들이 선망하는 전통적인 엘리트 계급의 위신을 획득하려는 부르주아들의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구 귀족계급의 문화를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 신흥 부르주아에 의해 키치의 생산과 소비가 촉진되었다. 상층 계급에 대한 모방적 취미가 형성된 것이다.
문학과 키치
키치는 삶의 무의미함과 진부함을 벗어나 환상적인 도피처를 찾으려는 도시 대중의 정서에 호소한다. 간결하고 단순하며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 키치가 갖고 있는 덕목이 아닐까 한다. 키치는 감각적인 느낌과 정서에 호소한다. 독일의 박학한 소설가 헤르만 브로호는 '키치 소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으로(달콤한 키치 sweet kitsch), 혹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세상의 모습(시큼한 키치 sour kitsch)으로 기술한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을 반영하는 달콤한 키치는 달빛 아래의 다정한 연인,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어린아이, 행복한 가정과 같은 이미지에서 잘 드러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세상을 반영한 시큼한 키치는 전쟁 영화나 공포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위험, 죽음, 절망을 제시한다. 문학에서 미디어 체험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키치의 방식이 스며들었고, 상품의 이름이나 문화적 기호모방, 기존의 문화 양식을 의도적으로 조합하였다. 대중적으로 상업적인 예술 현상이 '키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욕망의 키치
예술을 감상할만한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여유가 없는 노동자 대중은 자신들의 여가시간을 메우기 위해, 정형화 되어있고 소화하기 쉬우며 이미 다 조리되어 있는 문화경험을 요구한다. 산업사회는 인간의 물화를 심화시키면서도 그 물화를 오히려 충족, 행복, 성취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물화 상태로부터 탈출을 좌절시키는 여러 장치, 기술,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욕망은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사회적으로 모방된다. 욕망은 결핍감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 결핍감 자체를 사회적으로 대량 생산하고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것이 후기 산업사회이다.
러브호텔 같은 키치
키치는 엄밀히 말하자면 고급문화를 흉내 내려고 하는 저급 문화다. '엔디 워홀'이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지만 작품에는 현대의 철학적 화두, 이를테면 '시뮬라크르'와 같은 화두들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며 현대성의 문제와 싸우려는 분명한 투쟁이었다. 그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었으며 단순한 키치라고 할 수 없다. 문화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면서 어디까지가 고급이고 어디까지가 저급인지 따지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는 시대지만, 키치는 얕은 깊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저급문화와는 다르다. 키치는 철학적 주제의 껍질만을 가져와 모방하고,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척 기만하면서 대중을 현혹한다. 겉은 화려한 대상을 본떠 그럴듯하게 치장해 두었지만 실제로는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마치 겉이 중후하고 화려하게 지어놓은 러브호텔과 같은 것이 키치의 본질이다. 우리 인간들 중에는 키치적인 사람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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